세스 그레이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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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세스 그레이싱어는 미국의 야구 선수로, 투수 포지션에서 활약했다. 매클린 고등학교에서 투수와 유격수로 뛰며 게토레이 선수상을 수상했고, 버지니아 대학교에 진학하여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야구 미국 대표팀으로 출전하여 동메달을 획득하는 데 기여했다. 1998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서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으며, 이후 한국, 일본 프로 야구에서도 활동했다. 한국에서는 KIA 타이거즈에서 2년간 뛰며 20승을 기록했고, 일본에서는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요미우리 자이언츠, 지바 롯데 마린스 등에서 활약하며 다승왕, 베스트 나인 등의 수상 경력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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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 그레이싱어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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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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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세스 그라이싱어 |
영어 이름 | Seth Greisinger |
출생일 | 1975년 7월 29일 () |
출생지 | 캔자스주 캔자스시티 |
신장 | 190cm |
체중 | 90kg |
포지션 | 투수 |
투구 | 우투 |
타석 | 우타 |
선수 경력 | |
드래프트 | 1996년 MLB 드래프트 1라운드 |
데뷔 | MLB / 1998년 6월 3일 |
최종 출장 | MLB / 2005년 6월 5일 |
소속팀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1998, 2002) 미네소타 트윈스 (2004)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2005) 기아 타이거즈 (2005–2006)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2007)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8–2011) 지바 롯데 마린스 (2012–2013, 2014) |
국가대표 | |
올림픽 | 1996년 하계 올림픽 |
올림픽 메달 | |
메달 | 1996 애틀랜타 야구 동메달 |
MLB 성적 | |
승패 | 10승 16패 |
평균 자책점 | 5.51 |
탈삼진 | 118 |
NPB 성적 | |
승패 | 64승 42패 |
평균 자책점 | 3.16 |
탈삼진 | 630 |
수상 내역 | |
수상 | 센트럴 리그 최다승 (2007, 2008) 센트럴 리그 베스트 나인 (2008) NPB 올스타 (2007) |
2. 아마추어 경력
세스 그레이싱어는 버지니아주 맥클린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버지니아 대학교에서 대학 야구를 했다. 1994년과 1995년에는 컬리지 서머 베이스볼에서 케이프코드 야구 리그의 브루스터 화이트캡스에서 뛰었으며, 1995년에는 리그 올스타로 선정되었다.[1][2] 1996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에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 1라운드로 지명되었다.
5세부터 야구를 시작하여 매클린 고등학교 3학년 때 야구에 전념했으며,[7] 투수 겸 유격수로 활약했다. 1992-1993년 시즌에는 버지니아 주의 게토레이 선수상을 수상했고, 1993년 MLB 드래프트에서 7라운드(전체 195위)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 지명되었다. 그러나 교육열이 높은 부모님의 권유와 학위 취득에 대한 본인의 의지로 버지니아 대학교에 진학했다.[7]
버지니아 대학교에서 처음 2년간 9승 12패, 평균자책점 4.75를 기록했다. 3학년 때는 123이닝 동안 12승 2패, 평균자책점 1.76, 탈삼진 141개를 기록하며 주력 선수로 활약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미국 야구 국가대표팀으로도 선발되어 동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2. 1.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 미국 야구 국가대표팀으로 출전하여 3승을 거두며 동메달 획득에 기여했다.[7]3. 프로 경력
버지니아 대학교를 졸업하고 1998년 메이저 리그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서 데뷔했다. 2005년 KIA 타이거즈에 입단하여 2년간 활동한 후, 2007년 일본 프로 야구 센트럴 리그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에 입단, 그 해 16승으로 다승왕 타이틀을 획득했다. 2008년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하여 17승으로 2년 연속 다승왕과 베스트나인(투수 부문)에 선정되었다.
2012년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168이닝 이상을 소화하며 12승 8패, ERA 2.24를 기록했다. 일본 7시즌 통산 885이닝 64승 42패, ERA 3.16을 기록했다.[4]
3. 1.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MLB)
버지니아 대학교를 졸업하고 1998년 메이저 리그 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서 데뷔했다. 이후 미네소타 트윈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서도 뛰었다. 1998년부터 2001년까지는 팔 인대 부상으로 인해 경기에 거의 출전하지 못했다.3. 1. 1.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1998년, 2002년)
1996년 MLB 드래프트 1라운드(전체 6위)에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지명을 받아 프로에 입단했다.[5] 버지니아 대학교를 졸업한 후 1998년 6월 3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서 메이저 리그 데뷔를 했다. 이 해에는 21경기에 선발 출전하여 6승을 거두었지만, 이후 메이저 리그와 마이너 리그를 오가는 생활을 하게 된다. 2000년과 2001년에는 부상을 입어 2년 연속으로 공식전에 등판하지 못했다.3. 1. 2. 미네소타 트윈스 (2004년)
2004년에 미네소타 트윈스로 이적했다.[4]3. 1. 3.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2005년)
시즌 개막 전 3월에 워싱턴 내셔널스에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로 이적했다.[3] AAA급 귀넷 스트라이퍼스에서 계속 뛰었고, AAA 올스타 선수로 선정되었지만, 올스타 게임을 앞둔 6월 7일에 팀에서 방출되었다.[3]3. 2. 한국 프로 야구 (KBO)
2005년 KIA 타이거즈에 입단하여 한국 프로 야구 경력을 시작했다. KIA 타이거즈에서 2년 동안 뛰면서 통산 20승 18패, 평균자책점 3.28을 기록했다.[3] 한국에서 활약할 당시 그의 별명은 '회색가수'였는데, 이는 'Greisinger'의 발음이 'Gray Singer'와 비슷했기 때문이며, 원래 독일어로는 '노인 가수'를 뜻한다.3. 2. 1. KIA 타이거즈 (2005년 ~ 2006년)
2005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팀인 KIA 타이거즈에 입단하여 14승 12패, 평균자책점 3.09를 기록했다.[3] KIA 타이거즈에서 2년 동안 뛰면서 통산 20승 18패, 평균자책점 3.28을 기록했다.[3] 한국에서 활약할 당시 그의 별명은 '회색가수'였는데, 이는 'Greisinger'의 발음이 'Gray Singer'와 비슷했기 때문이며, 원래 독일어로는 '노인 가수'를 뜻한다.2005년 7월 8일, 두산 베어스로 트레이드된 다니엘 리오스의 대체 선수로 KIA 타이거즈와 계약했다. 등록명은 "그레이싱어"였고, 등번호는 '''59'''번이었다. 중간에 합류했음에도 6승을 거두었다.
2006년에는 선발 로테이션의 한 축으로 29경기에 등판하여 14승 12패, 평균자책점 3.02, 164탈삼진을 기록하며 한국 통산 20승(18패)을 달성했다. 같은 해 12월에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와 계약하며 일본으로 건너갔고, 등번호는 '''29'''번이었다.
3. 3. 일본 프로 야구 (NPB)
2005년 KIA 타이거즈에서 2년간 활동한 후, 2007년 일본 프로 야구 센트럴 리그의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에 입단하여 그 해 최다승(16승)으로 다승왕 타이틀을 획득했다.[3] 2008년에는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하여 2년 연속 다승왕(17승)을 차지하고 베스트나인(투수 부문)에 선정되었다.[3]2012년 지바 롯데 마린스로 이적하여 12승 8패, 평균자책점 2.24로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나,[4] 2013년에는 부상으로 13경기 출전, 5승 4패, 평균자책점 4.54를 기록했다. 일본 프로 야구 통산(7시즌) 885이닝, 64승 42패, 평균자책점 3.16을 기록했다.[4]
3. 3. 1.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2007년)
시즌 일본 센트럴 리그의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에서 에이스로 활약했다.[3] 당초 외국인 선수 쿼터 문제로 디키 곤잘레스와 함께 기용될 예정이었으나, 곤잘레스가 개막 직전 수술로 인해 갑작스럽게 귀국하여 시즌 아웃되면서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했다. 개막부터 29이닝 연속 무사사구를 기록했으며(끊어진 경기에서도 사사구는 1개뿐이었다), 5월 31일에는 결승 적시타를 직접 치기도 했다.개막 이후 활약으로 2007년 올스타전에 일본 진출 첫 해임에도 감독 추천으로 출전, 7월 21일 2차전에 등판하여 5회말부터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16승으로 센트럴 리그 최다승 타이틀을 획득했으며, 선발 등판 횟수, 무사사구 경기 수, 투구 이닝, 피안타율, 사사구율, 피출루율, 피장타율 등 여러 부문에서 리그 1위를 기록했다. 리그 특별 표창으로 스피드업상도 수상했다.
3. 3. 2.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8년 ~ 2011년)
2007년 시즌 일본 센트럴 리그의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에서 에이스로 활약했지만, 구단의 낮은 예산으로 인해 알렉스 라미레즈와 함께 방출되었다. 그 후, 2008년에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계약하며 센트럴 리그 승리 부문 1위를 차지했다.[3]2007년 가을, 한신 타이거스가 그레이싱어 영입을 검토한다는 기사가 보도되었지만, 같은 해 11월 29일 야쿠르트와의 조건 조율 실패로 자유 계약 선수로 공시되자 한신이 총액 2년 6억 엔을 제시하며 영입 의사를 밝혔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도 영입 의사를 보였고, 야쿠르트 역시 계속 협상을 이어갔다. 야쿠르트는 한신을 넘는 2년 총액 7억 엔까지 제시액을 올렸지만, 소프트뱅크는 협상에서 철수했고, 야쿠르트와의 협상도 결렬되었다. 2007년 12월 11일,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2년 총액 5억엔으로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스포츠 호치 기사에 따르면, 그레이싱어는 "수도권에서 우승 경쟁을 할 수 있는 구단"을 강력히 희망했으며, 전년도 연봉 4000만엔에서 6배 이상 오른 금액을 받게 되었다. 등번호는 야쿠르트 시절과 같은 '29'번이었다.
2008년에는 선발 로테이션의 한 축으로 활약하며 17승을 기록, 2년 연속 센트럴 리그 최다승 투수가 되었다. 친정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를 상대로는 6경기에 등판해 5승 무패, 평균자책점 1.58을 기록했지만, 세-퍼 교류전에서는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를 상대로 2경기에서 2패, 평균자책점 14.00으로 부진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1차전에 선발 등판했으나 4⅓이닝 3실점(2자책)으로 강판되었고, 일본 시리즈 4차전에서는 세이부에게 홈런 2개를 허용하며 5이닝 5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
2009년 4월 3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개막전(도쿄 돔)에서 메이저 리그, 한국, 야쿠르트 시절을 통틀어 처음으로 개막 투수를 맡았지만, 3회 6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 시즌 방어율은 한때 5점대까지 이르렀지만, 최종적으로 13승 6패를 기록했다. 특히 한신을 상대로 4승 무패, 야쿠르트를 상대로 3승 1패를 기록하며 강한 면모를 보였다. 주전 포수 아베 신노스케와 호흡이 맞지 않아 두 번째 포수 쓰루오카 가즈나리와 배터리를 이루는 경우가 많았다. 시즌 중 오른쪽 팔꿈치 부상으로 2010년 3월 1일 검사를 위해 귀국했고, 팀은 리그 3연패와 7년 만의 일본 시리즈 우승을 달성했지만 포스트 시즌에는 등판하지 못했다.
2010년에는 부상으로 6경기 등판에 그치며 승리 없이 2패, 일본 진출 후 처음으로 승리를 기록하지 못했다. 한신전 연승 기록도 "8"에서 중단되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 4차전에 선발 등판했으나 3이닝 무실점 후 4회에 오다 고헤이에게 2점 적시타를 맞고 강판되며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도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2011년에도 요미우리에 잔류했지만, 추정 연봉은 2.6억엔에서 대폭 삭감된 8000만엔이었다.
2011년에는 수술한 오른쪽 팔꿈치 회복이 늦어져 9경기에 등판해 1승 5패, 평균자책점 4.15를 기록했다. 7월 13일 1군 등록 말소 후 한 번도 1군에 등판하지 못하고 시즌을 마감했으며, 계약이 갱신되지 않아 팀을 떠났다.
3. 3. 3. 지바 롯데 마린스 (2012년 ~ 2014년)
セス・グライシンガー일본어는 2012년 지바 롯데 마린스에 입단하여 기량을 회복했다.[4] 2012년 1월 9일, 1년 계약(연봉 31200000JPY + 성과급), 등번호 '46'번으로 지바 롯데 마린스 입단이 발표되었다.[8] セ・パ일본어 교류전에서 12개 구단 중 1위인 방어율 0.83이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8월 14일 소프트뱅크와의 경기에서 승리 투수가 되어, 스기우치 토시야에 이어 역대 8번째이자 외국인 선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센트럴 리그와 퍼시픽 리그 12개 구단 모두에게 승리를 거두었다. 2012년 시즌 168이닝 이상을 소화하며 12승 8패, ERA 2.24를 기록하며 부활을 알렸다.[3]2013년에는 부상으로 13경기 출전에 그쳤고, 5승 4패, 방어율 4.54를 기록했다.
2014년에는 부상으로 1군 등판이 없었고, 10월 31일 구단으로부터 다음 시즌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발표되었다.[9] 12월 2일, 자유 계약 공시되었다.[10]
4. 수상 및 타이틀 경력
연도 | 수상 내용 |
---|---|
2007년 | 다승왕, 스피드 업 상[4] |
2008년 | 다승왕, 베스트 나인, 최우수 배터리상 (포수: 아베 신노스케)[4] |
기타 | 최우수 투수 1회, 월간 MVP 2회 |
2007년과 2008년에는 센트럴 리그 최다승을 기록하여 2년 연속 다승왕 타이틀을 차지했다.[4] 이는 가네다 마사이치, 곤도 히로시, 무라야마 미노루 등과 함께 센트럴 리그 최장 기록이다.[4]
4. 1. 국제 대회
1996년 하계 올림픽 야구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미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이었다.4. 2. 일본 프로 야구 (NPB)
セ・リーグ일본어 최다승 타이틀을 2회(2007년, 2008년) 획득했다.[4] 2008년에는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었으며,[4] 같은 해 아베 신노스케와 함께 최우수 배터리상을 수상했다.[4] 2007년에는 스피드업 상을 수상했다.[4]2007년에는 디키 곤잘레스가 개막 직전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했다. 개막부터 29이닝 연속 무사사구를 기록하는 등 활약하여, 2007년 올스타전에 감독 추천으로 출전했다.[4] 16승으로 센트럴 리그 최다승 타이틀을 획득했고, 스피드업 상도 수상했다.[4]
2008년에는 17승을 거두며 2년 연속 센트럴 리그 최다승 투수가 되었다.[4]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를 상대로는 강했지만,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에게는 약한 모습을 보였다.[4] 일본 시리즈에서는 4차전에 등판했지만 패전 투수가 되었다.[4]
2009년에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개막전에서 개막 투수를 맡았지만 패전 투수가 되었다.[4] 13승 6패를 기록하며 한신 타이거스와 야쿠르트를 상대로 강세를 보였지만, 주전 포수 아베 신노스케와는 호흡이 맞지 않아 쓰루오카 가즈나리와 배터리를 이루는 경우가 많았다.[4] 시즌 중 오른쪽 팔꿈치 부상으로 2010년에는 검사를 위해 귀국했다.[4]
2010년에는 부상으로 6경기 등판에 그치며 일본 진출 후 첫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4] 2011년에도 요미우리에 잔류했지만, 연봉이 대폭 삭감되었다.[4]
2011년에는 오른쪽 팔꿈치 수술 후 회복이 늦어져 9경기 등판, 1승 5패, 평균자책점 4.15를 기록하고 퇴단했다.[4]
수상 목록 |
---|
다승왕 2회 (2007년, 2008년)[4] |
베스트 나인 1회 (2008년)[4] |
최우수 투수 1회 (2008년) |
월간 MVP 2회 (2007년 6월, 2008년 7월) |
최우수 배터리상 1회 (2008년, 포수: 아베 신노스케)[4] |
스피드 업 상 1회 (2007년)[4] |
5. 개인 기록 (NPB)
wikitext
기록 종류 | 내용 |
---|---|
첫 등판·첫 선발 | 2007년 3월 31일, 대 주니치 드래건스 2차전(나고야 돔) |
첫 탈삼진 | 상동, 2회말에 타이론 우즈로부터 헛스윙 삼진 |
첫 승리·첫 선발 승리 | 2007년 4월 6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1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 |
첫 완투·첫 완봉 | 2007년 4월 20일, 대 주니치 드래건스 4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 |
첫 안타 | 2007년 4월 20일, 대 주니치 드래건스 4차전(메이지 진구 구장), 7회말에 아사쿠라 겐타로부터 우전 안타 |
첫 타점 | 2007년 5월 31일, 대 오릭스 버펄로스 2차전(메이지 진구 구장), 2회말에 톰 데이비로부터 중전 적시타 |
올스타 게임 출장 | 1회 (2007년) |
전 구단 승리 | 2012년 8월 14일, 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16차전(후쿠오카 야후! JAPAN 돔), 9이닝 1실점 (※역대 11번째) |
복수 구단에서의 최다승 | (※역대 6번째) |
5. 1. 투수 기록
기록 종류 | 내용 |
---|---|
첫 등판·첫 선발 | 2007년 3월 31일, 대 주니치 드래건스 2차전(나고야 돔) |
첫 탈삼진 | 2007년 3월 31일, 대 주니치 드래건스 2차전(나고야 돔), 2회말에 타이론 우즈로부터 헛스윙 삼진 |
첫 승리·첫 선발 승리 | 2007년 4월 6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1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 |
첫 완투·첫 완봉 | 2007년 4월 20일, 대 주니치 드래건스 4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 |
5. 2. 타격 기록
- 첫 안타: 2007년 4월 20일, 대 주니치 드래건스 4차전(메이지 진구 구장), 7회말에 아사쿠라 겐타로부터 우전 안타[3]
- 첫 타점: 2007년 5월 31일, 대 오릭스 버펄로스 2차전(메이지 진구 구장), 2회말에 톰 데이비로부터 중전 적시타[3]
5. 3. 기타 기록
- 올스타 게임 출장: 1회 (2007년)
- 전 구단 승리: 2012년 8월 14일, 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16차전(후쿠오카 야후! JAPAN 돔), 9이닝 1실점 (※역대 11번째)
- 복수 구단에서의 최다승 (※역대 6번째)
6. 등번호
연도 | 등번호 |
---|---|
1998년, 2002년 | 50 |
2004년 | 58 |
2005년 | 48 |
2005년 ~ 2006년 | 59 |
2007년 ~ 2011년 | 29 |
2012년 ~ 2014년 | 46 |
7. 연도별 성적
볼넷
이브
회
안타
홈런
사구
삼진
책점
자책점